고등학교 1학년 때,
‘20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40살이 되기 전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회사원, 사회적으로 훌륭하거나 성공한 사람, 그리고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 등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었다.
하지만, 아직 순수함을 추구했던 나이였기에 나는 누구보다 솔직한 사람이 되어있겠다 싶었다.
‘맞아, 아마 나는 거짓말 안하기로 소문난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의도하지 않게 나의 20살의 고개는 책 속에 파묻혀 의학이라는 학문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집중했다. 의사처럼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직업이 있으랴. 환자를 대하는 일처럼 솔직하고 인간적인 일이 있을까?
‘맞아, 난 내 길을 바로 가고 있는 거야’
1987년 한 대학생이 물 고문에 의해 사망이 되고 사회와 정부에 대한 적지 않은 반감은 한 학기 내내 대 정부 투쟁의 나날이었다. 이러한 사회에 회의감이 들었지만 누구는 지구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데 나는 적어도 ‘전쟁이 일어날 지라도 도서관에서 조용히 책을 보며 인생의 최후를 맞이하겠다’ 다짐도 하였다.
20대 후반, 대학병원의 전공의가 되고 나서 의사처럼 거짓말을 많이 하는 직업은 흔치 않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가망 없은 환자의 삶에 용기를 주기 위해, 불안과 좌절 속에 있는 그들의 가족을 위해 난 거짓말을 밥 먹듯 해야 했다. 의도가 어떻든, 나는 나의 어린 시절 스스로에게 한 약속 과도 같은 꿈에서 벗어나기 시작 했다.
30대에 개인 병원을 오픈하고 나만의 공간을 가지며 나는 생각했다. 난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을까? 이 공간을 통해 나만의 전문성과 자율 그리고 정체성을 만들고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나만의 특성을 갖는 병원을 운영할 수 있을까 했던 걱정과 달리 시골의 작은 공간은 지역의 많은 분들의 삶에 위로와 희망이 되어줄 수 있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50대 중반이 되어 난 새로운 공부를 했다. ‘나를 새롭게 활용한다’는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목표를 가지고 미래학에 전념했다. 인간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공부하며 알게 되었다. 혹시 과학의 발달로 모든 시나리오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미래의 불확실성도 극복할 수 있겠거니 생각도 했다.
학문에 매달리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내 앞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 크면 클수록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더 중요해진 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마음과 시간이 직업을 만들고 그 속에서 사상을 만들어진다. 부끄럽지만 짧은 인생을 돌아보면 나의 주류를 이루는 사고는 정직과 몰두이다.
정직은 인생을 값지게 만들고 몰두는 인생에 활력을 선사한다.
집중하는 것은 낭만이고 열정은 이를 유지하게 하며, 절제는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